4월 19일 (일) 맑음 by saltyJiN

일요일 점심, 모처럼 바깥에 나와 새로 문을 연 커피집에 들러 공동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외투의 가슴 주머니에는 이미 집에서 프린트 해 온 사무라이 수도쿠가 한장 들어있었지만 주위의 노트북들과
계속하여 들락날락거리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조용히 가운데에 쌓인 신문 맨 뒷장만을 열심히 넘기며 수도쿠를 찾는다.
주말이라 그런지 상중하 세개가 함께 실려있다. 상부터 풀어나가기로 하고 열심히 눈을 굴리고 있는데 맞은편에 한 남녀가
자리를 잡는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워낙 둘이 주위를 신경쓰지 않고 대화를 나눠서 어쩌다보니 내내 듣게 되었다.

남자는 30대 후반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30대 초반일 것 같은 분위기. (한마디로 생긴건 그냥 아저씨.) 한국인.
여성은 그보다는 젊어보이는 캐나다 사람인 듯 싶은데 분위기가 낯이 익다 싶어 떠올려보니...
KBS 미녀의 수다에 나오는 캐나다 출신 도미니크 비슷한 분위기. 그정도로 예쁜 건 아닌데 언뜻 비슷하게 느껴졌다.

남자분은 일 때문에 이쪽으로 오신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싶었지만 대화 내용으로 짐작했을 때 해외 체류 경험이 좀 있으신 듯.
자근자근 하고자 하는 말은 큰 불편함 없이 전달할 능력이 되지만 발음이 치명적으로 구수한 한국식 발음. 내가 남 발음가지고
뭐라 할 처지는 절대로 아니다만 조금 안타까웠다고 할까, 저정도 자기 의사 밝힐 능력이 되는걸 보면 조금만 투자하면 고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오기로 일부러 꾿꾿히 고치지 않는건가 싶을 정도였음. 그렇지만 자신이 관련된 일로 해외 다니시는걸 보면
의사소통에 특별히 문제가 있는건 아닐테고 내가 걱정할 부분이 아니지.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

이 둘의 대화를 엿듣는데 난 이 남자분이 부러워 어쩔줄을 몰라했다. 대화 내용이 아니라 이 여자의 영어가 너무 깔끔하다.
공공장소임을 감안했을 때 필요 이상의 또렷한 목소리, 또렷한 발음, 어찌보면 조금 느릴 수도 있지만 외국인인 내게 있어선
딱 적절한 속도. 직업이 영어 선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허나 그건 아니고 일로 연관된 사이인 듯.
정말 어찌나 귀에 착착 감기던지, 이런 영어라면 얼마든지 듣고 있어도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을 것 같아. 내게 지난 일년간
이런 친구가 있었다면 지금쯤 스티브 카렐이랑 농담따먹기를 하고 있을텐데. 그 남자분이 어찌나 부럽던지 시선과 펜을 쥔
손은 수도쿠에 있지만 내 귀는 그 둘의 대화를 듣느라 정신이 없다.

나보다 조금 늦게 들어온 그 둘은 내가 상을 끝내고 중에서 헤매고 있을 무렵 조금 걷자며 가게를 떠났다. 날씨 좋은 일요일에
바람좀 쐬러 간만에 나온건데 공동테이블에서 홀로 수도쿠나 하고 앉아있는 내 모습이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다. 나도 두시간동안
커피집 구석에서 종이 한장두고 끙끙댈게 아니라 15분, 20분 가볍게 커피한잔에 대화를 나누다 걸으러 나가고 싶어졌다.
약 40여분에 걸쳐 수도쿠 상중하를 다 마치고 가게를 나섰다. 햇살은 아직도 따사로왔지만 난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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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4/23 03:0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altyJiN 2009/04/26 06:57 #

    하긴 한국이었다면 더더욱 어려웠을지도.
    <혼자 다니는 사람 = 불쌍한 사람> 같은 시선이... -ㅅ-);;
  • * 2009/04/28 19:00 # 삭제 답글

    핸드폰없음 큰일남.... 밥먹을때도 괜하게 소식뜸한친구 찾게되는.. 참 의미있는 시간이지.^^
  • saltyJiN 2009/04/29 14:46 #

    밥먹을땐 오로지 밥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다만 한국식당에 혼자 가서 음식 나오기까지는 확실히 주위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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