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길 by saltyJiN

뜬금없이 왠 배우? '배움'을 잘못 쓴거 아닌가 할 지도 모르겠지만 아니다. 배우 맞다. 연기자 말이다.

내 접객 태도로 인해 매니저에게 주의를 받은 이야기는 이미 한번 한 적이 있다. 정말로 그 다음주부터 쉬프트를 빼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180도 변해 사근사근 센스 넘치는 재담꾼으로 바뀐 것도 아니다.
이 일이 있고 며칠 후 어느 날 아침, 어떤 이와도 가볍게 10분 이상의 대화가 가능한, 세상 모든이가 브라더인 서비스업이
천직으로만 보이는 부매니저가 조용히 나를 불러 세운다. 부매니저도 내가 처한 상황을 알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팁을 알려주겠다며 일단 자신이 나에대해 느낀 것 부터 짚어보겠단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보기엔 나에겐 크게
두개의 문제점이 있다고.

1. 내 영어에 대해 자신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나와 일하면서 언어로 크게 불편함을 겪은 적도 없고 한두번 일 끝나고 맥주도 마셔본 경험으론 난 괜찮은 놈이고
영어로 주눅들어 있을거 없다, 그정도면 충분하니 자신있게 말 걸고 대화를 할 수 있을거라며 북돋아 준다.

2. 내성적이다.

"네가 내성적인건 알지만 장담컨데 내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거야."
(사실 여기에서 깜짝 놀랐다. 난 부매니저가 워낙에 사교적이고 적극적이라 나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기에.)

"네 성격이 어떻든, 일단 이 앞치마를 입으면 더이상 넌 너가 아니야. 배우가 되어야 해."

손님과 대화를 시작하는 건, 이어 나가는 건 생각처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간단한 질문 몇개만 던지만 손님은 떡밥 물은
물고기처럼 혼자 줄줄 읊어댈거란다. 내가 할 일은 적절한 떡밥을 던지는 일. 그러며 방금 전 손님을 예로 든다. 한 중년 남성분이
음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쁘지도 않은 상황에서 데울 우유까지 준비해놓고는 잠시 등돌리고 다른 일 하다가 깜빡 잊었다. 다시
등돌리고 기다리고 있는 손님을 보곤 얼른 준비에 들어가며 손님과의 대화를 유도했는데 대화가 은근히 길어져서 음료를 받아 들고도
잠시동안 손님은 가게를 떠나지 않았다.

"좀전에 그 손님 있지? 내 바보같은 실수로 조금 늦어졌지만 결과적으로 손님은 불평하나없이 오히려 나와의 대화를 즐기고 떠났잖아.
내가 한건 별 대단한게 아니야. 몇가지 질문을 던졌을 뿐이고 거기에 그가 혼자 줄줄 늘어놨을 뿐이지. 사실 첫 몇문장 이후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 궁금하지도 않았다고. (내가 보기엔 둘다 엄청 즐긴 걸로 보였는데...)"

사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알바 없지 하고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텐데 이렇게 아픈곳을 제대로 지적해주며 조언해주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마웠다. 그가 지적한 것들은 나도 알고는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들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나를 위한 작은 숙제를 내 주었다. 뭐라도 좋으니 질문 다섯가지를 생각해 돌려가며 손님들에게 써먹는 것.



이로부터 어느새 2주가 지났다.
크게 변한건 없다. 여전히 손님과 눈 마주치기를 두려워하고 하와유 아임굿 땡큐 수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숙제도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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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717系 2009/04/20 19:14 # 답글

    영어를 어떻게 잘해야할지 고민하는 것이 너나 우리의 문제인듯.. 결국 우리말처럼 자연스럽게 쓰면 되는 건데.. 괜히 고민하게 되잖아..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 saltyJiN 2009/04/21 08:28 #

    쉽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를 만들고 꾸준히 대화하면 돼.
    친구를 만드는거지.


    헉. 엄청 어렵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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