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629 Montreal D5 저녁 1/3; Pain GOOD by saltyJiN

다운타운을 피해 북적이지 않는, 관광객의 발길이 적다 못해 없는 곳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것 까지는 좋았는데 공원 놀이터에 나온
백인 가족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들과는 물과 기름처럼 완벽히 분리되어있는 나를 보니 마음이 지쳐온다. 그래, 차이나 타운에 가보자.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기까지와서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해서 이제껏 가지 않고 있었다. 와보니 토론토에 비하면 '타운'이라는
이름이 민망할 규모였지만 역시 차이나타운답게 활기를 띄고 있었다. 뭐라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이 사람들 왁자지껄 떠드는 걸 듣는 것
만으로도 푸근하고 정겹다. 중심부의 광장(이라 부르기도 상당히 민망한 크기. 그래도 꼴에 이름은 공원이라고 붙여놨더라.)에 앉아 또
그렇게 사람구경을 하며 그냥 있었다. 사실은 맛있는 마파두부를 먹고 싶었는데 식당이 워낙 많고, 다들 제법 사람들이 차있어 도무지
어디가 제일 괜찮을지 몰라 일단 보류중이었다. 그렇게 2-30분 가량 앉아있는데 한 남자가 말을 건다. 작은 체구에 배는 살짝 나오고
안경을 낀 짧은 머리의 40중후반은 되어보이는 백인아저씨. 이근처 어디가 맛있는지 아냐고 묻는다. 나도 여기 처음이라고 했더니 '오, 이런'
같은 표정을 짓는다. 어디 먹으러 가려던 참이 아니었냐길래, 가려곤 했지만 나도 어디가 좋을지 몰라 그냥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간단한 대화가 잠시 오가고 그가 묻는다.

"어디로 갈까?"

어라?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같이 먹으러 가는 분위기가 되었다. 나도 특별히 다른 일이 없음을 이미 밝힌 상태인데다 둘의 목적이 같음을
이미 확인했으니 달리 빠져나오기도 그렇다. 하긴 중국요리는 혼자보단 둘 이상이 가서 먹는게 실속적이기도 하니 잘된일 일지도. 그치만
나도 뾰족히 아는데가 없으니 선뜻 앞장서기가 그렇다. 왠지 동양인으로서 맛있는 중국요리집으로 안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발은 더
무거워진다. 나도 어지간히 우유부단하기에 뭐 먹을까? 하는 상황에서 별다른 답을 제시하지 못한 채 정말 5-10분 가량을 선 채로 있었다.
참다 못했는지, 그가 먼저 입을 연다. "랍스터 좋아해?"하며 그가 가리킨 곳은 바로 눈앞의 식당인데 지금이 랍스터 철인지 창에 랍스터
싸게한다는 종이가 붙어있엇다. 사실 계속 지켜봤지만 사람도 그다지 없고 썩 괜찮아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답을 제시할 것도
아니었으므로 흔쾌히 그렇다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자신을 Rick(가명)이라 밝힌 이 이탈리안 2세는 잦은 출장에 허리가 안 좋아져 차이나타운에
2주에 한번씩 지압 마사지를 받으러 온다고 한다. 지금 마사지 받는 선생님 이전에 갔던 다른 한 곳은 자신은 정말 허리가 좋지 않아 갔음에도
여자가 자꾸 다른 곳만 어루만져 뒤로 이 선생을 찾아가게 되었다고. 지금 이 선생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인데 가끔 너무아파 고통을
호소하면 웃으며 "Pain GOOD~"으로 답해주신다고. 그럼 자신은 "Pain NO GOOD!!!"으로 받아치고. 여튼 돈은 좀 들지만 그만한 값어치는
있다며 제법 만족해 하는 눈치다. 이윽고 음식이 나왔지만 그는 서너점 먹더니 별로라며 젓가락을 내려두었다. 확실히 그렇게 맛있지는
그럭저럭 먹을만은 했기에 난 묵묵히 젓가락을 놀렸다. 내가 워낙 말이 없는 탓에(특히 먹을 땐 더더욱) 그렇게 재미난 대화가 오고간건
아니지만 그가 이거저거 질문(이라기 보다는 일부러 대화를 풀어나가기 위한 노력)해주고 본인의 이야기라든가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어
열심히 듣고 질문에는 가능한 성실히 답하려 노력했다.

몬트리올에서는 뭐하냐길래 그냥 여기저기 걸어다니고 저녁엔 페스티벌 구경하다 돌아간다 했더니 클럽은 안가냐고 묻는다. 춤을 못추기에
가지는 않지만 그냥 음악 듣는곳은 좋아한다 했더니 자기도 그렇단다. eBay에서 씨디 컬렉션을 사고팔고 한다 그런다. 그러다 내일은
뭐하냐길래 특별한 계획은 없다 했더니 자기가 마침 내일 쉬는 날이니 괜찮다면 차로 이곳저곳 보여주겠단다. 일단은 고맙다고 했지만
왜이렇게 친절하게 나오는건지 잘 모르겠다. 그러다 혼자 열심히 먹고 있는 날 발견하고 이거 혹시 처음부터 굶주린 동양애에 대한 동정심에서
모든게 시작된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본인은 일부러 먹지 않고 내가 먹는 걸 보고 만족하고 있다거나. 그런 동정심은 필요 없는데...
갑자기 자존심이 조금 상하려 한다. 더 먹을 수도 있었는데 그런 마음 때문인지 조금 더 먹다가 반쯤은 남기곤 배를 두드렸다. 계산서를
달라했더니 30불 조금 넘게 나왔다. 거의 나혼자 먹었기에 20불을 꺼내 올려놓았더니 그가 됐다며 돌려준다. 식사에 초대한건 나고, 여긴
몬트리올이니 자기가 대접하겠다고. 허나 토론토 들르면 그때 수거할테니 걱정 말라고. 그렇게 계산을 마치고 잠시 화장실로 향했다. 일을
보고 세수를 한번 하고 상황을 정리해본다. 이거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지? 불과 한시간 전만해도 생판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밥좀
먹고 얘기좀 했다고 금방 친구행세 하는데 이거 이대로 괜찮은건가? 내가 가진거 없는 그냥 여행객에 불과한것도 이미 알텐데 나한테 뭐
뜯어갈게 있는건가? 내가 여자였다면 밥한끼 사주고 달콤한 말로 꼬드겨 그 다음은 안봐도 보인다고 하지만 내 경우야 그런것도 아닐테고.
본인도 토론토에선 외로운 이방인이기에, 그 기분을 알기에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건가?(한달에 한번꼴로 토론토에 출장오는데 거래처
사람들과 어울리긴 싫고 그렇다고 특별히 아는 사람이 있는것도 아니고 정보도 없어 호텔방과 근처에서만 논다는 얘기를 했다.)
뭐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보이진 않으니, 그리고 나도 일단은 남자니, 특별히 할일도 없거니와 심심한데 한번 믿어볼까 하며
보조가방에 있던 스위스칼을 오른쪽 주머니로 옮겼다.

식당 입구로 돌아와보니 비가 쏟아지고 있다. 가까이에 자기 차가 있는데 이 상태에서 뛰어가는 건 좀 무리고 조금 더 기다려보겠단다.
일단 믿기로 했으니, 밥을 이렇게 얻어먹게 됐으니 내게 맥주 한잔정도 사게 해 달라고 말을 건넸다.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면서도 경계의
벽이 허물어진 데에 내심 기뻐하는 눈치다. 그렇게 몇분을 서있다가 잠시 비가 약해진 틈을 타 그의 차로 달려갔다. 미츠비시의 빨간 중형차.
근데 차가 너무 깨끗하다? 새차냄새마저 나는 듯 하다. 이거 혹시 렌트카? 사실은 몬트리올 사람이 아니다? 번호판을 확인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치지만 캐나다 렌트카 번호판의 특징을 모르기에 봐봤자... (한국은 '허'였던가?)

어디로 가고싶냐길래 글쎄... 나야 잘 모르니 그냥 너한테 맡긴다 했더니 아가씨들 춤추는데 가고싶냐고 묻는다. 그런덴 됐다고 했더니
정말이냔다. 됐다고, 괜찮다고 했더니 더이상 묻지 않는다. 사실 한번만 더 물어보면 마지못해 그러자 하려했는데... 그러다 생각이 났다.
여긴 몬트리올, 게이의 도시다. 게이바라는 곳 한 번 구경해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아는데가 있다며 한두군데 전화를 해보곤 차에 시동을 건다.
아직은 시간도 조금 이르고 (9시쯤이었다) 챙길것도 있고 하니 잠시 자기집에 들르잔다. 뜬금없이 왜?! 하는 불안도 생겼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안돼! 가지마!" 할 수도 없으므로 알겠다하고 가는 길에 이런저런 얘기 (거의 일방적인 그의 이야기)가 오고갔다. 전반에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가 갑자기 묻는다.

"너 게이야?"
"?????? 아니!!"
"난 게이야."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www.saltyjin.com/tb/1972647 [도움말]

덧글

  • 딸기뿡이 2008/07/11 22:35 # 삭제 답글

    맙소사........................... 그래서 함께 '게이바'에 가셨나요? (웃으면 안되는데 웃음이.....)
    그나저나, 저는 saityJin님이 녀성분인 줄 알았어요 엄훠나 어째어째... ^^
  • saltyJiN 2008/07/12 00:14 #

    갔는지 안갔는지는 곧 또 글을 올리겠습니다. 으음... 제가 그런 냄새를 풍기는 걸까요... OTL
    그래서 저런 일이 일어난건가...
  • 검은곰 2008/07/11 23:22 # 답글

    에헤... 뭔가 재미난 경험을 하셨군요;
    아니, 본인은 재미나지 않으셨을 수도 있지만...... 웃어서 죄송해요;;;
    즐거운 여행 되시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돌아오시는 날까지, 재미난 일들만 일어나길 바랄께요.^^)
  • saltyJiN 2008/07/12 00:18 #

    원래 저런건 여행하며 가장 조심해야할 것중 하나인데(지나친 호의, 친절) 개념없이 덥썩 물은거죠.
    사실 점점 여행이 밋밋해져 가길래 블로그에 쓸 '거리'가 필요했....
댓글 입력 영역